평생 맹장 수술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남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일이 갑작스럽게 내 일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적합한 병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전신마취, 기관 내 삽관, 복강경 수술, 간호통합병동 입원 등의 경험담이 담긴 충수염 수술 후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수술 전날
몇 달 전부터 배에 통증이 있었다. 오래 지속되는 통증은 아니었지만, 신경성 위염도 있고 장염과 소화불량도 자주 있어서 올해 10월에 받을 예정인 건강검진을 일찍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저녁때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는데 배변의 통증보다는 더 아팠다. 저녁을 거르고 진통제를 먹어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서 다행히 그날 저녁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수술 당일 - 병원 4군데 돌아서 드디어 수술
새벽 3시 - 극심한 복통
새벽 3시쯤에 극심한 복통으로 잠에서 깨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온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어도 너무 아프고 불편해서 자세를 편하게 하려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 바닥에 누워도 보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있어도 통증은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문득 '혹시 맹장염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아픈데도 불구하고 최대한 배를 이리저리 꾹꾹 눌러보았다. 그랬더니 배꼽을 중심으로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아팠고 배꼽 위쪽과 아래쪽은 통증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맹장염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응급실을 가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운 응급실은 건대병원인데 이 시간에 병원에 간다고 해도 어차피 수술을 해야 한다면 아침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맹장염이라면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고 싶지는 않았다. 맹장 수술은 대학병원보다는 수술 경험이 많은 전문병원에서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지 않을 거라면 응급실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통증은 통증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꼬여가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와중에 너무 힘들었는지 잠깐 잠이 들었다.
첫 번째 내과 - 진료 후 진료의뢰서 발급
남편이 새벽 6시쯤에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깨웠다. 다행히 통증은 새벽보다는 견딜만했다. 그래서 아침에 집에서 가까운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 누워서 진료시간까지 기다렸다.
오전 9시 전에 집에서 나와 병원까지 배를 부여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신기하게도 힘은 하나도 없는데 통증은 익숙해졌는지 걸을만했다. 다행히 내과에 일찍 도착해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는 진찰을 한 후에 세 가지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첫째 신장염, 둘째 충수염, 셋째 게실염. 게실염은 처음 들어보는 거라 물어보니 장에 생기는 염증이라고 했다. 게실염도 맹장염과 증상이 비슷하여 아랫배 통증이 상당하다고 했다.
일단 소변검사로 신장염인지 확인해 보자고 했다. 너무 어지럽고 힘들어서 소변검사 전에 물을 마셨다. 소변은 처음 나오는 것은 버리고 중간소변부터 받으면 된다. 소변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통증은 그때도 견딜만했다. 아니 오히려 통증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충수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소변검사 결과가 나와 다시 진료실에서 설명을 들었다. 의사가 약간의 단백뇨는 있지만 염증 반응은 없다고 했다. 가까운 건대병원으로 진료의뢰서를 써 줄 테니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예전에는 진료의뢰서를 받으면 해당 병원에 전화로 예약하고 방문해서 제출하는 과정이 번거로웠는데 요즘은 온라인으로 바로 접수가 되어서 병원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온다고 했다. 기술 발달로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었다.
두 번째 대학병원 - 진료 및 수술 불가
내과를 나와서 또 고민에 빠졌다.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직접 건대병원으로 갈 것인지, 성격이 급한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건대병원에 기어이 갔다.
창구 접수직원이 진료과에 확인한 후 현재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검사를 원하면 응급실로 내원하라고 안내를 했다. 아니 의사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모두 학회에 가서 당일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럼 응급실로 내원을 해서 검사 결과가 충수염이면 수술할 수 있냐고 다시 물어보니 검사는 할 수 있지만 수술은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응급실에 갈 이유가 없지 않냐고 했더니 다른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아! 역시나 충수염 수술은 대학병원이 답이 아니구나!' 진료의뢰서를 써줘서 어쩔 수 없었지만 대학병원에서 충수염 수술은 할 수 없었다.
나는 또 어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고민 말고 바로 전문병원으로 가야 했지만 생각나는 대로 그냥 가까운 혜민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병원을 두 군데나 걸어 다니는 무리를 해서인지 너무 어지럽고 힘이 들었다. 택시에서 건대병원 고객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창구 접수직원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고,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세 번째 종합병원 - 검사
혜민병원 외과 외래진료는 대기자가 없어서 바로 볼 수 있었다. 외과의는 진찰을 한 후에 처음에 방문한 내과의과 비슷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정확한 검진을 위해 혈액 검사와 CT검사를 했다. CT검사 시에 조영제를 투여해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혈관주사(정맥주사)를 팔에 놓고 피를 뽑았다. CT검사는 몇 분 걸리지 않지만 조영제를 맞으면 몸이 갑자기 확 뜨거워진다. 역시나 별로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다.
검사결과가 나오려면 1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몸은 힘이 없고 지쳐있는데 배에 통증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무뎌진 건지 정말 통증이 사라진 건지 헷갈렸다. 그럼 충수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자 지금까지 내가 헛수고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진료실에 들어가니 외과의가 CT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충수염이었다. 보통 충수 돌기 직경이 6mm 정도인데 염증 때문에 많이 부풀어올라 12mm가 넘는다고 알려주면서, 이 정도면 통증이 상당했을 거라고 말했다. 어제저녁부터 금식을 했으니 오후에 바로 수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여기서 수술을 할 거냐고 물었다.
난 남편과 통화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하고 남편에게 내 상황을 알리고 수술을 어디서 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예전 같으면 폭풍검색을 했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가까운 한솔병원에서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혜민병원에서 진단서, 검사결과지, CT복사본을 받아서 남편과 함께 한솔병원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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